우르호 케코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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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핀란드의 공영방송 YLE가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발표한 명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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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핀란드 제8대 대통령
우르호 칼레바 케코넨
Urho Kaleva Kekkonen
파일:Urho-Kekkonen-1977.jpg
출생1900년 9월 3일
러시아 제국 핀란드 대공국 피엘라베시[1]
사망1986년 8월 31일 (향년 85세)
우시마 헬싱키
재임기간제21대 총리(1기)
1950년 3월 17일 ~ 1953년 11월 17일
제21대 총리(2기)
1954년 10월 20일 ~ 1956년 3월 3일
제8대 대통령
1956년 3월 1일 ~ 1982년 1월 27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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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실비 케코넨 (사망)[1]
자녀2명
학력헬싱키 대학교 (법학 / 박사)
종교개신교 (핀란드 복음주의 루터교회)
신체181cm
최종 당적

[1] 혼전성은 우이노(Uino).

1. 개요
2. 생애
2.1. 대통령 당선 전
2.2. 대통령 당선 후
2.2.1. 케코넨 퇴임 이후 핀란드 정치의 변화
3. 여담



1. 개요[편집]


핀란드의 제8대 대통령.


2. 생애[편집]



2.1. 대통령 당선 전[편집]


핀란드 중남부 사보 지방에 위치한 피엘라베시(Pielavesi)라는 두메산골[2]에서 벌목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케코넨은 헬싱키 대학교에서 1928년 민법학학사학위, 1936년에 민법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1920년대부터 점진적으로 농민들의 이익향상 운동에 관여하였고, 1927~32년 농무부 소속 직원이 되었다. 그는 1936~56년 농민당(후에 중앙당으로 개칭)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원래 그는 소련에 강경한 입장을 취하였다. 케코넨은 핀란드가 겨울전쟁에서 패배한 1940년 의회에서 핀란드의 영토를 조금이라도 소련에 양보함을 반대했는데, 당시 핀란드 의회에서 영토할양에 반대한 사람은 그를 포함하여 2명뿐이었다. 그러나 1943년에 이르자 나치 독일이 패전하리라 인식하고 그는 핀란드가 독립을 유지하려면 소련을 상대로 우호적인 중립 정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여러 장관직과 입법부의 직책들을 섭렵하면서 케코넨은 유호 쿠스티 파시키비가 대통령으로 있던 1950년에 수상으로 선출된 뒤 1953년까지 재임하다가 1954년에 다시 수상이 되었다.


2.2. 대통령 당선 후[편집]


1956년에 파시키비가 물러나자 대통령으로 선출되었다. 대통령이 된 후 파시키비의 외교정책을 계승하여 적절한 중립정책으로 동쪽의 소련을 자극하지 않으면서 공산화의 위협을 막아내었다. 이러한 핀란드의 외교정책은 파시키비-케코넨 독트린이라 불렸다. 이와 동시에 스칸디나비아 국가 및 서방국가들과 유대관계도 강화하였다. [3]

KGB소련의 지지로 핀란드 국내에서 강한 권력을 유지하면서 의회 간선제로 실시되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1961년의회 해산을 단행하고, 총선을 실시함으로써 야권을 약화시켜 1962년 재선에 성공했고, 1968년에도 간선으로 다시 당선되었다.

그렇게 케코넨은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단 민주주의가 돌아가는 국가의 국가원수로는 극히 드물게 26년간이나 집권하면서 국민의 두터운 지지를 획득하였다. 하지만 그의 집권기에는 정부에 의해 언론 검열이 자주 일어났고 대통령이 내각 구성에 사사건건 개입하는 등의 중대한 위헌적 월권을 저질렀으며, 소련이 자신을 지지할 것이라는 자비도보 각서(Zavidovo Memorandum)를 이용해 의회를 겁박하고 비상권한을 연장시키는 독재를 자행했다. 결국 케코넨의 협박에 굴복한 의회는 1973년에 아예 헌법을 개정하여 선거 없이 케코넨을 재선시켰고, 1978년 또다시 요식행위와도 같은 간선 끝에 케코넨은 다시 당선되었다. 하지만 이때 케코넨에 대한 핀란드인의 불만은 점점 고조되었고, 케코넨이 국민연합당과 중앙당의 지지를 받고 있고, 사민당이 후보를 선출하지 않았음에도 독자 출마한 기독교민주당 후보에게 선거인단이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그렇게 케코넨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던 1981년 4월, 수상이었던 사민당의 마우노 코이비스토는 여론을 등에 업고 케코넨의 사임 압력을 거부하고 노조와 의회 내 원내 정당들을 규합하여 케코넨의 권한을 무력화시켰다. 결국 케코넨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1981년 10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사직서를 의회에 제출하고 1982년에 수리된다. 그리고 케코넨의 후임자는 그의 오래된 정적인 코이비스토였다.


2.2.1. 케코넨 퇴임 이후 핀란드 정치의 변화[편집]


케코넨 시기까지 핀란드의 이원집정부제는 대통령의 권한이 더 강한 형태였으며 선거도 간선제였다. 후임인 마우노 코이비스토는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고자 총리의 권한을 케코넨 시기보다 대폭 강화하고 선거제도도 1994년직선제로 바꾸었다.


3. 여담[편집]


특유의 대머리가 인상적이다. 실제로도 핀란드에서는 케코넨 전 대통령의 외모가 처럼 자주 쓰이곤 한다. 어찌보면 전대갈, 문어라고 놀림받던 대한민국 전두환과 유사한 셈이다. 1970년대는 핀란드도 다른 서양 국가들처럼 남성들 사이에서 히피식 장발이 꽤 유행했던 시기였는데, 정작 대통령은 완전 대머리였으니 국민들이 안 보이는 데서 몰래 킥킥댔던 건 당연지사였다. 핀란드어언사이클로피디아인 'Hikipedia'에서는 아예 케코넨의 머리를 위키백과 퍼즐처럼 합성한 로고를 쓰고 있다. #
[1]핀란드 북사보 피엘라베시.[2] 지금도 생가가 보존되어 있다.[3] 이때 소련은 중도좌파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핀란드 사회민주당보다는 중도우파에서 우파를 오가는 농민당의 케코넨하고만의 협상을 선호했는데, 대표적으로 당시 소련은 카를아우구스트 파게르홀름 수상의 사민당 우위 연립내각에 입각한 장관 중 하나의 아버지가 라푸아 운동의 중진이었단 이유로 외교적, 경제적 압박을 가했고, 일체의 협상을 거부했다. 이때 케코넨은 소련의 권력자인 흐루쇼프와의 친분이 있다고 주장하며 비밀리에 독대했고, 이후 소련이 케코넨을 지지하자, 그는 수십년 간 원내 1당이었던 사민당을 각종 방법으로 억압하며 입각조차 시키지 않았다. 이는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는 중대한 헌법 위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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